제물진두 순교성지는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이승훈 베드로의 후손들과 박순집 베드로의 외가집안이 치명한 순교터로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10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곳입니다. [치명일기], [박순집증언록], [일성록] 등에 나타난 간략한 순교기록을 토대로 제물진두에서 10명의 순교자가 도끼 등의 사형도구를 사용하여 잔인하게 처형되고 효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구 자료들이 부족하여 이곳에서 처형된 10명의 순교자들의 행적은 물론 이들이 왜 제물진두에서 처형되었는지에 대해 밝혀지지 않았기에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 1868(무진)년 과 1871(신미)년에 처형되신 10명의 순교자를 표현한 그림

김대건 신부는 1844년 부제서품을 받았습니다. 부제 때 조선에 잠시 들어온 김대건 부제는 당시 146원에 선박을 구입하여 ‘라파엘호’라 명명하고 1845년 4월 30일 신자 11명과 함께 제물포항을 떠나 중국 상해로 갔습니다. 같은 해 8월 17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31일 제물포항으로 입국하기 위해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떠났지만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게 되었습니다.

* 1845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기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나는 한국인 첫 성직자인 김대건(안드레아) 부제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1888년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하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님 4명을 표현한 그림

개항이후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제물포항을 통하였고 7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블랑 주교의 요청으로 조선선교 사목을 위해 조선의 첫 수녀회인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님들(4명 – 프랑스2명,중국2명)이 입국하신 곳입니다. 제물포항은 개항기 선교사들이 입국하고 출국하는 조선교구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때문에 블랑 주교는 1889년 7월에 제물포 본당(현 답동성당)을 설립하게 됩니다.

*1888년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하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님 4명을 표현한 그림

제물진두순교성지 표지석

-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

제물진두는 열 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된 곳이다.
1868(무진)년에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박순집(베드로), 사위 백치문(사도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처형되었고, 1871년(신미)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베드로) 성현의 후손인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 증손자 이인구, 균구 형제, 그리도 이(손)명현, 백용석, 김아지 등 6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첫 성직자인 김대건(안드레아)부제가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보고, 1845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기위해 이곳 가까운 포구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다.

아울러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4명(프랑스 국적 2명, 중국 국적 2명)이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한 곳으로 한국 천주 교회사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이다. 

- English

Martyrs Memorial Chapel of the Jemooljindoo(Incheon Diocese)

Jemooljindoo is the place where 10 Korean Catholic martyrs were executed.

In 1868, three family members of Peter Park Soon-Jip known as “Witness of Martyr’s achievement”, Aunt Kim and her husband Peter Son Neobjeogi, her son-in-law John the Apostle Paek Chi-Moon, sacrificed their lives. And grandson of Lee Maria was also executed here.

In 1871, 6 people were executed at this place which include descendants of Peter Lee Seung-Hoon, the first baptized Korean Catholic. They are Mrs. Jeong who was married to Lee Seung-Hoon’s grandson Lee Jae-Gyum and Seung-Hoon’s great grandchildren Lee Yeon-Goo and Gyoon-Goo brothers’ And Lee (Son) Myung-Hyeon, Paek Yong-Seok and Kim Ah-Ji were also among the people executed here.

Jemooljindoo is also known as a historical place where St. Andrew Kim Tae-Geon departed back to China after he examined the condition of Korean Catholic church for about one year before his ordination. In April of 1845, he headed to Shanghai in China, boarded on a small wooden boat around this place.

In 1888, four members of Sisters of St. Paul of Chartres (2 French & 2 Chinese nuns) entered through this place for their missionary work in Korea, and this historical event made Jemooljindoo as very significant place in Korean national history as well as in Korean Catholic history.

- 中文

仁川教区 济物浦殉教記念経堂

十位天主教徒在济物浦大坡处刑 1868(戊辰) 年 “逆转殉教者形迹” 的孙顺集(伯多禄)的阿姨 金氏, 她的丈夫扫宽脸(伯多禄), 女婿白治文(约翰), 李马丽亚的孙子等四人在被处刑, 1871年(辛未)韩国最 初的洗礼者李承寅(伯多禄)至昔后的孙子李在谦的妻子 郑氏, 曾引進龟屯·钓龟兄弟, 还有李(孙)明景, 白光石, 金致茎等6位也在此被处刑.

韩国第一位圣职圣金大建(安得若阿)副祭, 回国后利用 一年期间了解韩国教堂的情况后, 1845年4月为了收受祭 圣品, 在附近的港口坐小木船起身去了中国上海. 济物 浦头是具有历史意义的地方.

同时, 1888年所属沙尔德(Chartres)圣保禄修女会的 四位修女(法国国籍两位, 中国国籍两位) 入境朝鲜济物浦头, 此处不仅对韩国天主教历 史有意义, 对历史也是非常有意义的 地方.